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로베스피에르의 전기로 장 마생의 《로베스피에르 : 혁명의 탄생》이 있다. 로베스피에르의 인생을 중심으로 [[프랑스 혁명]]을 풀어낸 작품인데, 로베스피에르를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꽤 괜찮다. 다만 로베스피에르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, 로베스피에르 한계에 대해선 비판이 소극적이므로 그런 부분은 좀 주의해서 읽을 것. 무튼 로베스피에르가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판단하는데, 제법 도움이 되는 책이다. 로베스피에르 관련 전기는 국내에 이 책 밖에 없으니, 로베스피에르에 대해 알기 위해 읽을 책으로 추천할만한 책인 것은 분명하다. * 로베스피에르는 150여 년 전 [[청교도 혁명|영국에서 혁명을 일으켜 군주를 처형]]한 [[올리버 크롬웰]]과 비슷하다는 평도 있다. 둘 다 [[금욕주의|금욕적]]이고 청렴결백하였지만 독선적인 국정 운영 방식으로 인해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점과 자신의 사상에 집착하여 무시무시한 [[공포정치|공포통치]]를 하였고 이로 인해 국민들에게 원성을 사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히다. 그리고 둘 다 머리가 잘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지만 크롬웰은 사후에, 로베스피에르는 생전이라는 것이 차이점이지만 말이다. * 의외의 사실이지만 [[나폴레옹]]과 로베스피에르는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. 나폴레옹은 원래 워낙의 하급 장교라서 [[출세]]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, 나폴레옹이 출세할 수 있도록 전방 장교로 꽂아주고 지원해준 사람이 바로 로베스피에르의 동생인 [[오귀스탱]]이다. 오귀스탱이 나폴레옹을 [[낙하산]]으로 임명한 것은 알려지기로는 나폴레옹이 쓴 공화제 옹호 정치 선전물을 보고 감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. 군사 쿠데타를 경고한 로베스피에르이지만, 그 씨앗이 자신의 주변에서 자라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던 셈이다. 여담으로 나폴레옹은 로베스피에르가 [[숙청]]된 다음에는 곤란을 겪게 되지만, 자신이 [[자코뱅]]이 절대로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고 같이 [[단두대]]로 가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. 애초에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세력과는 별개의 인물이다. * 한편 그의 사후 밀랍인형으로 유명한 마리 투소(Marie Tussaud)[* [[프랑스 혁명]] 시절 살았던 여인으로, [[루이 16세]]와 [[마리 앙투아네트]]를 비롯해 [[단두대]]에서 처형당한 사람들의 목을 가지고 [[데스마스크]]와 밀랍인형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다. 그녀가 세운 마담 투소 밀랍인형 박물관은 현재도 운영 중이며, 전 세계에 스무 곳이 넘는 분점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유명하다.]가 그의 잘린 머리로 직접 본뜬 데스마스크와 당대 주변인들의 그에 대한 기록 등을 종합해 현대의 법의학 전문가들이 그의 실제 생전 모습을 재현했는데, 널리 알려진 문서 상단의 초상화와는 딴판인 모습이다.[[https://www.thehistoryblog.com/archives/28426|#]] 실제로 로베스피에르는 여섯 살 때 앓은 [[천연두]]로 얼굴이 얽어 있었으며, 현대에는 [[유육종증]]으로 추측하는 미상의 질병을 달고 살아서 밤마다 [[코피]]를 흘리고 만성 [[황달]]과 무력증, 안면 경련에 시달리는 등 건강이 매우 나빴다고 한다. * [[러시아 혁명]] 직후 [[소련]]에서 그를 기념하는 조각상을 세운 적이 있다. 1918년 11월 3일 [[모스크바]]에서 공개되었다. 그러나 11월 4일 동상이 스스로 부서져 버렸다. 당시 소련은 혁명의 혼란기로 인해 제대로 된 청동이나 대리석 등을 구하기 어려워서 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, 이 과정에서 부실 공사가 있던 것으로 추정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